나쁜 사마리아인들, 장하준, 부키
나쁜 사마리아인들, 장하준, 부키
처음에 나쁜 사마리아인들이라는 제목만 보고는 종교서적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읽으면서 든 생각은 '경제도 종교'라는 것이었다. 한 마디 더 추가하자면 '까무러치리만큼 무섭다'
누구나 그렇듯 나 역시 경제 성장과 세계화의 원동력은 신자유주의에서 비롯되었다고 배웠다. 비단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경제 강대국들이 바로 신자유주의 경제를 바탕으로 오늘날의 부를 이룩했다고 생각해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신자유주의의 경제이데올로기의 허상과 부자나라의 탐욕을 호되게 까발렸다. ('불온서적'으로 분류될 만큼) 경제학을 이 책처럼 직접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서술한 책을 본 적이 없다. 거기다 근거를 뒷받침하는 적절한 비유와 수치까지 보여주었다. 그 중 하나를 여기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내게는 여섯 살 난 아들이 있다. 아들은 나에게 의존하여 생활하고 있지만, 스스로 생활비를 벌 충분한 능력이 있다. 나는 아들의 의식주 비용과 교육 및 의료 비용을 지불하고 있지만, 내 아들 또래의 아이들 수백만 명은 벌써부터 일을 하고 있다. 또한 일을 하면 진규의 인성 개발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아이는 지금 온실 속에서 살고 있기에 돈이 중요한 줄 모르고 지낸다. 아이는 자기 엄마와 내가 저를 위해 노력하는 것에 대해, 자신의 생활을 보조하고 자신을 가혹한 현실로부터 보호해 주는 것에 대해 전혀 고마움을 모른다. 아이는 과잉보호를 받고 있으니 좀 더 생산적인 인간이 될 수 있도록 경쟁에 노출시켜야 한다. 아이가 경쟁에 더 많이, 그리고 더 빨리 노출될수록 미래에 아이의 발전에는 더 많은 도움이 될 것이고, 아이는 힘든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정신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나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말고 일을 하게 해야 한다. 아이에게 더 많은 직업 선택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 아동 노동이 합법적이거나 최소한 묵인이라도 되는 나라로 이주를 생각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이는 '개발도상국은 급속하고 대대적인 무역 자유화가 필요하다'는 자유무역주의 경제학자들의 주장과 근본적으로 논지가 일치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선진국 자신들이 경제성장을 이루던 시절, 자국의 기업과 기술을 보호하고자 펼쳤던 여러가지 경제 보호 정책에 대해서는 입을 싹 다문 채 개발도상국에게는 신자유주의 이론을 따르는 것만이 최선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그리고 그들이 개발도상국과 맺으려는 협정의 내용 또한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가져올 분야에 있어서 개발도상국의 시장을 완전 개방하라고 강요한다. 또 외국 자본에 대한 모든 규제를 풀고, 성장할 수 있는 기업에 대한 보조금이나 장려정책을 펴지 말라고 한다. 장하준교수의 또 다른 저서 제목처럼 '사다리를 걷어차는' 것이다. 거기에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지 못하는 주된 이유가 문화적인 이유, 즉 게으름에서 비롯된다니 참 할말을 잃게 만든다.
한편의 잘 써진 소설을 읽는 것처럼 풍부한 이야기거리로 역사적 진실과 오해들을 설명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던 부분들이 많이 있었다.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것들이 사실에 근거하여 생각하면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음을 준 몇안되는 소중한 책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한 장(章)씩 읽으며 함께 고민을 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20090875 최혁수